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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Book] <아무튼, 식물> 임이랑

by ye0n.09 2024. 8. 23.
 
아무튼, 식물
‘생각만 해도 좋은, 설레는, 당신에게는 그런 한 가지가 있나요?’ 아무튼 시리즈 열아홉 번째는 ‘식물’이다. 밴드 ‘디어클라우드’에서 노래를 짓고 연주하는 저자가 삶에서 도망치고 숨고 싶었던 때에 만난 식물들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그 식물을 들이고부터 차츰 시작된 변화에 관한 이야기다. 잠 못 이루는 새벽에 이파피를 어루만지는 애틋함, 죽이고 또 죽이면서 길러진 의연함, 죽었는지 살았는지 몰랐다가 겨울을 이겨내고 맺힌 새순을 발견한 호들갑스런 기쁨까지, 식물을, 무언가를 길러본 이들만이 알 수 있는 이야기들이 빼곡하게 담겨 있다. “이제 나는 이 세상에 내가 키울 수 있는 것과 키울 수 없는 것이 극명하게 나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라날 가능성도 없이 공들여 키워왔던 것들 중에는 뜨겁고 건조한 땅이 고향인 식물도 있었고, 사람의 마음도 있었다. 정말 인정하기 싫지만 내 커리어의 어떤 부분도 그렇다.” 식물을 기르는 마음에 관한 단단하고 애틋한 이야기 “장마라 분갈이를 못하니까 식물 수다용 계정을 팠다.” 트위터 계정 @nap717nap의 첫 트윗이다. 타임라인에는 이게 정말 한 집에 있는 식물이 맞나 싶게 많은, 다양한 식물 사진이 끊이지 않고 올라왔다. 계정주는 밴드 디어클라우드에서 노래를 만들고 연주하는 임이랑. 식물을 기르는 지식이 아니라 식물과 함께 살아가는 ‘나’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들려달라고 했고, 그는 과연 식물을 기르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그 기쁨과 의연함을, 식물과 함께하면서 조금은 단단해지고 홀가분해진 삶의 변화를 진하게 담아냈다. _좋아하면 욕심이 생긴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어서 병원에 가는 게 맞았을 어떤 시기였다. 쌓아도 쌓아도 일은 다시 허물어졌다. 관계도 그랬다. 어딘가로 숨고만 싶던 때였다. 그때 식물을 만났다. 만났다기보단 도망친 것인지도 모른다. 피사체로서 식물의 아름다움을 사랑했을 뿐, 처음부터 새순을 하나하나 매만지는 사람은 아니었다. 죽이고 또 살리면서 식물의 세계로 걸어들어갔다. 차츰 각각의 삶에 알맞은 물과 흙을 알아갔다. 식물은 정직했다. 질서가 있었다. 그 순서 안에 담긴 경이로움이 있었다. 그 생명력과 질서와 경이로움에 매혹되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내가 꼭 필요하다는 기분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화분은 점점 더 숫자가 늘었고, 볕과 바람이 드는 집 안의 모든 자리는 식물에게 내어주었다. 새벽의 쓸쓸함만큼이나 아침의 영롱함을 즐기게 되었다. 식물의 내일을, 다음 주를, 다음 달을 기다리는 기대가 마음속에서 영토를 넓혀갔다. 그렇게 식물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_무언가를 기르는 이들은 알 수 있는 것들 언젠가 볕을 많이 쬔 뒤로 수년째 회복 중인 고무나무부터 겨울을 이겨냈는가 싶었다가 결국 시들고 마는 작은 화분들까지, 식물을 기른다는 것은 죽이고 또 죽이는 생활이기도 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자라나지 않는, 죽어버리고 마는 것들이 있듯이 기대 이상으로 자라고 불쑥 솟아나는 것들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관계도, 노래도 그랬다. 여전히 불안을 떨치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과거의 나와는 다른 나를 사랑하면서도 아직도 한편으로는 그런 나를 혐오하고 있다. 그 불안과 혐오를 없애고 감추려고 애쓰는 대신 흩어지면 흩어진 대로, 부서지면 부서진 대로 살아가는 데 힘을 쓰는 법을 배우고 있다. 변화한다는 것 자체가 두려웠었다. 그렇지만 생명이 있는 것들의 현재란 언제나 과도기임을 식물에게서 배웠다. 식물 친구들에게 더 좋은 흙과 비료를 마련해주고, 비를 흠뻑 맞히고, 햇살을 조금 더 머금도록 애쓰는 만큼이나 나를 기르는 법을 알아가고 있다.
저자
임이랑
출판
코난북스
출판일
2019.03.22

 

초반, 나는 작가가 내가 고등학교 시절 관심있었던 밴드의 멤버였다는 사실에 제일 먼저 놀랐다. 그 당시 좋아하던 아이돌이 심야 라디오 DJ였는데, 고정 게스트로 나오던 가수분이 있었다. 그 분이 보컬이라 노래만 몇 번 들어봤었지 구성원들을 잘 알지 못했는데 책에서 밴드명이 언급되길래 정말 놀랐다. 반가운 마음에 책에 더 끌렸다.

 

어느 날 작가가 마음의 병을 얻으면서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던 중 식물을 접하게 되었고, 식물에게 정성과 애정을 쏟으면서 내면이 회복되고 성장되는 것을 느낀다. 식물에게는 휴일이 없다. 그저 낮과 밤. 정확히는 해가 있는 시간과 달이 있는 시간만 존재하며 끝없이 이어진다. 그런 식물을 보살피기 위해서 인간 또한 부지런히 움직이게 된다. 그렇기에 오히려 안정감이 들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식물은 멈춰있지 않는다.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느리게 생명을 표현하고 있다.

 

작가는 식물의 ‘생명권’을 강력히 주장한다. 인간에게 맞춰 가지를 자르고 성장을 제한하는 것들이 ‘학대’라고 말한다. 나는 이 부분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생명’이란 인간, 동물, 곤충 등의 범위만 생각했는데, 그렇게 넓은 범위까지 바라볼 수 있구나 깨달았다.

 

나와키운다라는 동사는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어릴 식물을 가꾸는 일을 잠깐 하셨던 어머니는 나에게 작은 화분을 주시면서 한번 키워보라고 하신 적이 있었다. 책임져야 대상이 생긴 나는 나름의 노력을 했었지만, 애석하게도 손으로 시들게 해버렸다. 결국은 어머니가 다시 가져가셨다. 어머니의 손길에 점점 살아나는 모습에 약간은 서운한 마음이 정도였다. 선인장도 키워봤다가 가시까지 썩거나 주는 것을 까먹어서 말라버리게 했던 전적도 있었다. 이런 나에게 식물을 알고 키우는(나의 어머니 같은) 사람은 거의 마법사나 다름이 없었다. 이런 모습이 있기에 오히려 끌렸던 주제가 아니었나 싶다.